※ 실제 원고는 B5 판형으로 제작됩니다.
w. 라무네
번쩍 눈이 뜨였다. 어슴푸레 밝아 오는 바깥을 발견한 히나타는 몸을 일으키며 끙, 하는 소리를 내었다. 조금쯤 피곤해도 정해진 시간만 되면 이 몸은 알람이라도 맞춰진 듯 의식을 끌어오고는 했다. 그럭저럭 편리한 기능이라고 볼 수 있었다. 초고교급의 알람 시계 정도려나. 주변이 부러워한다면 그런 식으로 웃어넘기기 일쑤였다.
몇 번이고 몸을 겹친 뒤 체력이 바닥났는지 기절하듯 잠들어 버린 코마에다를 씻겨 주는 일은 히나타의 몫이었다. 코마에다는 더러운 것을 결벽적으로 기피하는 편이었으므로, 그를 아침까지 그 상태로 둔다는 것은 둘 사이에서 있을 수 없는 선택지였다. 그런 주제에 왜 꼭 제 것은 안에 담고 있겠다며 오기를 부리는 건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안에 든 액을 빼내려 손대자마자 긴 속눈썹이 팔랑이며 들리는 것에 히나타는 내심 흠칫했었다. 코마에다가 잠에 취한 덕에 말싸움이 평소에 비해 어렵지 않았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어찌 되었든 막무가내로 군 뒤와 반쪽짜리이긴 해도 합의를 한 다음의 아침은 달랐으니 말이다.
오늘의 아침은 계란물을 입힌 토스트였다. 밥보다 빵을 선호하는 코마에다는 유독 조식을 가벼이 때우곤 했다. 아침 일찍부터 코마에다의 앞에 정갈한 일본식을 차려놓아 봤자 십중팔구 입맛이 없다는 것이 여실히도 티 나는 얼굴로 밥알을 세다시피 하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간단한 식단으로라도 제대로 끼니를 챙겨 주는 편이 나았다. 대충 그런 결론으로, 밥 파인 히나타 하지메 또한 코마에다와 함께 살게 된 뒤부터는 아침 식사를 빵으로 해결하게 되었다.
식사 준비가 거의 끝났을 무렵 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 쪽으로 다가가자, 아니나 다를까 반쯤 몸을 일으킨 코마에다가 히나타를 돌아보았다. 좋은 아침, 히나타 군. 혹사하는 바람에 갈라지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웃음기를 담은 채 흘렀다. 너도, 좋은 아침. 간단히 인사를 받아주고는 가까이 다가간다.
“나와서 아침 먹어.”
“응…… 좋은 냄새.”
“먹고 싶다고 했잖아.”
“후후, 기억해 줬구나……?”
별로 대단한 일도 아니었는데. 꽤 기꺼웠는지 코마에다가 조금 웃었다. 그야 히나타로서는 잊을 만한 것이 못 되기는 했다. 코마에다는 웬만해서는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으니. 반찬 투정을 할지언정 코마에다는 기본적으로 식욕을 비롯한 욕구가 남들보다 얕고 희미했다. 그 모든 욕심을 모두 한군데에 쏟아내는 사람처럼.
평범하고 평화로운 아침이었다. 코마에다는 느리게나마 제 몫의 토스트를 모두 씹어 삼켰다. 빈 접시를 씻어 건조대에 올려둔 히나타가 나갈 준비를 했다. 마른 편이지만 균형 잡혀 탄탄한 몸 위를 제복이 감싸는 모습을, 한 쌍의 시선이 흥미롭게 구경한다. 마지막으로 구두를 신고 몸을 일으키자, 벽에 기대어 서 있던 코마에다 나기토가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다녀와, 히나타 군.”
“…….”
익숙한 미소였다.
그러니까……. 이따금 찾아오는 ‘그날’의.
히나타 하지메와 코마에다 나기토의 집에는, 사용되지 않는 방이 하나 있었다. 작은 공간이었다. 불조차 자주 켜지지 않는. 집을 구할 때 코마에다가 유일하게 단 조건이었다. 둘이 쓰는 방은 하나면 충분했으므로, 넓은 집을 선호하지 않는 둘의 성향에 따라 1LDK 위주로 보고 있던 히나타는 잠깐 갸웃거렸다. 손님방이야? 여상한 질문에 코마에다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윽고 꺼림칙할 만큼이나 현실적인 지적이 따라붙었다.
‘히나타 군도 참……. 히나타 군이랑 내가 지내는 집에서 하루라도 자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그, 그런가…….’
코마에다의 빼어난 자기 객관화는 이따금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어찌 되었든 틀린 말은 아니었으므로 히나타는 순순히 끄덕였다. 확실히, 둘이 지내는 집에서 하루 자고 돌아가기 대 노숙하기라는 선택지를 준대도 열이면 열 후자를 고를 게 분명했다. ……그럼 뭔데. 괜스레 멋쩍어진 히나타가 다시금 묻자 코마에다는 샐쭉 웃고 말았다. 낯익은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침묵.
‘필요한 곳이야.’
곧이어 던져진 답은 불친절하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코마에다 나기토로서 자신의 차지가 될 좁은 공간을 그 이상으로 명확하게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코마에다는 늘 강박적인 불안증을 앓고 있었다. 히나타 하지메 역시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일평생 자신이 소중히 여겼던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만 하는 삶은, 즉 상실에 대한 상상으로 질식하는 순간순간인 셈이었다. 코마에다가 마침내 찾은 호흡은 희망을 향한 갈구였다. 손에 쥐고 있던 희망이 절망과 불운에 먹혀 버리면, 그저 다 쓴 산소통마냥 버려도 되었다. 고작 절망에 질 정도의 무언가는 제대로 된 희망이 아니다. 파편으로써 남은 조각을 미련 없이 버리며 그는 비로소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그의 ‘소중한 것’이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면?
그 하나뿐인 희망이 기어이 깨어진 후에는 어떻게 해야 좋은가.
그러므로 코마에다 나기토의 사랑은 불안과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었다.
방은 느릿하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텅 빈 공간에 가장 먼저 들어선 것은 꽤 멀끔해 보이는 피아노였다. 히나타는 언젠가의 대화를 떠올려내었다. ‘으응, 그렇네……. 피아노라면, 어렸을 때 연습하다가 뚜껑이 닫히는 바람에 손을 다친 적이 있었지? 아핫, 하마터면 평생 손을 못 쓰게 될 뻔했는데도 기적같이 나아졌으니 역시 나는 운이 좋다고 해도 되려나!’ 여느 때처럼 배실대는 낯짝이었으나 히나타는 그 속에서 좋지 않은 감정을 읽어내었다. 코마에다가 자신의 불행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순간마다 짓는 특유의 표정이 있었다. 짐짓 유쾌한 듯 말을 이어 봤자 아마 히나타 하지메는 그 모호하게 창백해진 안색을 간파해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깨지기 쉬워 보이는 화분, 예리하게 벼려진 칼날. 작은 크기의 비행기 모형. 투척용 소화기 몇 개와 어디에서 구해온 건지 모를, 눈에 익은, 독약. 방의 한쪽 벽에는 커다랗고 흰 개의 박제가 비치되었다. 코마에다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그 하얗고 보드라운 사체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방향성 없고 조잡한 잡동사니의 창고는 어느 행운만의 제단이었다. 코마에다 나기토는 이따금 벌을 받는 신도처럼 방의 문을 걸어 잠그고 제가 쌓아올린 모든 불운의 발자취에 목이 졸렸다.
그것은 일주일에 한 번이었다가, 한 달에 한 번이기도 했고, 사흘에 한 번이 되기도 했다. 대체로 히나타가 집을 비울 때 이루어졌기에 히나타 하지메는 집을 나설 적 코마에다가 보이는 반응으로써 그때를 추측하는 것이 다였다. 코마에다의 고집을 어떻게 꺾어야 좋을까. 트라우마투성이의 방 안에서, 불도 켜지 않은 채 유리구슬로 대체된 흰 개의 눈을 마주하고 있는 짓은 일종의 자해와도 가까웠다. 모를 리 없었다. 코마에다의 모든 불안과 공포가 자기 자신에게서 기인했다는 사실쯤은. 유일무이하게 찬란한 희망 그 자체라며 히나타 하지메와 그의 재능을 추앙하면서도…끈덕지게 발목을 붙잡는 행운과 불행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두 극단의 반복만이 그의, 코마에다의 인생이었으므로.